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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문화의 재건? -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미술전시 비교

시아옌궈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현대미술전시가 양국에서 개최됐다. 두 전시가 서로 다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시기획자의 기획의도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양국의 서로 다른 정신적 이념이 빚어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 몇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비교분석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아르코미술관 ‘@what : 신중국미술’ 전시 전경


첫째, 전시제목. 한국 측 전시제목은 ‘리부팅 : 한중수교 20주년기념 한국 현대미술 작가 중국전’이고, 중국 측은 ‘@what : 신중국미술’이다. 제목으로 볼 때, 한국 측 전시는 단순하게 학술적 의미만 강조하지 않은, 중국과의 교류에 더 큰 의의를 둔 전시이다. 더불어 문화와 정치 양방면의 요소가 함께 고려되었는데, 동아시아에 자리한 한중양국이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온 기억을 재가동시켜서 더욱 심도있는 교류를 이어가자는 것과 공동으로 협력하여 ‘서구중심적’인 현재의 문화 판도를 변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주제와 더불어 작품을 감상하면, 기획자가 한국 뉴미디어 문화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과 동아시아의 각국이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전통문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기회를 갖자고 제안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뉴미디어아트와 전통 수묵화를 접목시킨 이이남의 작품 <모네-진농-소치의 대화>에서 이러한 기획의도가 특히 잘 드러났다. ‘@what’에서 ‘@’는 인터넷시대를 상징하는 부호이자 새로운 생활방식을 암시하는 부호이다. ‘what’은 청년작가들이 새로운 창작 언어에 느끼는 미지성과 낯섦,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중국사회가 도시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새로운 사회현상에 대해 작가가 시도한 철학적 사고와 예술적 표현을 시사한다. 중국 측 전시는 문화의 다원화 현상과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중국작가가 어떤 새로운 예술 언어로 창작을 진행 중인지를 살펴보는, 그러니까 중국미술 내부의 현황을 학술적인 각도로 탐구하는 방향으로 기획된 전시임을 제목과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개막 당일에 열린 강연 ‘세계화 - 본토화 그리고 동아시아 현대미술’에서 판디안 중국미술관장은 세계화와 다원화의 오늘날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더 나아가서는 문화 정치적 관점에서 중국과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국가 모두가 오늘날 공동으로 직면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알리려는 것 또한 이번 전시의 취지라고 설명하였다. 판디안 관장은 전시제목 ‘新중국’에서 ‘新’은 예술적 언어와 표현이 새롭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이런 설명으로 합리화하는 것도 아주 틀리지는 않지만, 작가의 연령으로 보나 작품의 면모로 보나 ‘새로움’이라는 라벨을 붙이기가 적당하지 않다.


둘째, 전시의 목적. 정부적 차원에서 볼 때, 두 전시는 모두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앞으로 양국의 협력과 교류가 더욱 돈독해지기를 희망하는 행사이다. 한국 측 전시기획자 김영순은 전시소개 자료에서 ‘이미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은 한국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베이징이라는 또 다른 국제무대에서 소개하여 한국미술을 한층 더 세계적으로 알리고, 동시에 양국의 문화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도록 하는 것에 전시의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 이 전시가 동아시아 문화의 국제적 지위를 다지는데 도움이 되고, 서구중심의 기존 판도를 깨고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 역시 기획자의 바람이었다. 중국 측 보도자료에 따르면 ‘@what’의 기획취지는 이러하다. ‘새로운 세대의 중국작가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사회 속에서 생활하면서 성립한 새로운 사고 방식과 예술적 언어로 창작한 최신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취지를 전시와 연결해서 해석하자면, 중국 측 기획자는 생활방식이 완전히 바뀐 사회를 배경으로 살아가면서 ‘新’사상과‘新’언어로 창작하는 중국작가들을 있는 그대로 한국의 관객들에게 소개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 측의 전시는 ‘보시다시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군요, 앞으로도 함께 열심히 해서 더 강해집시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면, 중국 측 전시는 ‘보시다시피 지금의 우리 중국미술은 이렇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전시의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규모. 양측의 전시규모를 비교하자면, 한국 측의 전시가 작품 수량도 좀 더 많고 규모도 조금 더 크다. 한국 측 참여 작가들은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광주비엔날레 등의 국제전시에서 인정받은 작가들로, 그 중 6명이 사진과 뉴미디어아트, 3명이 회화, 1명이 설치미술 작가였고, 대부분의 나이가 중년 이상이었다. 참여 작품은 그들이 국제적 명성을 얻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대표작이거나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창작한 것이었다. 중국 측 전시는 주로 새로움을 보여주는데 중심을 두었기에 참여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국내외 인지도나 대표성 여부가 아니었다. 국제미술계에서 인정받는 쉬빙이나 먀오샤오춘 같은 작가도 있었고,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리후이, 천웨이, 왕웨이, 원링 그리고 뛰어난 신인작가 송이거와 위앤위앤 등으로 다양하게 작가군이 구성됐다. 종합하자면, 두 전시는 모두 자국의 미술발전 현황을 알리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알리려고 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넷째, 전시기간과 전시장. 한국 측 전시는 베이징 옌황미술관에서 2012년 9월 10일부터 9월 22일까지, 중국 측 전시는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2013년 2월 5일부터 3월 31일까지 열렸다. 김영순의 소개에 따르면, 한국 측 전시는 대관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몇 점의 작품은 종교적인 문제를 이유로 중국 당국의 전시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개막행사에 참가한 내빈은 한국 측의 문화관련 정부 관료가 대부분이었고, 중국 미술계 인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취재 온 언론들은 중국 언론이 주를 이뤘다. 중국 측의 전시는 한국 현지의 관련기관이 많은 관심과 도움을 보내왔다. 그리고 판디안 관장이 개막행사에 참가하고 또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강연을 준비한 것에 대해 한국 측은 만족해했다. 개막식에는 한국 언론 외에도 대여섯 정도의 중국 언론이 초대를 받고 취재를 왔는데, 이를 통해서 중국 측은 중국에서의 전시 홍보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리부팅’ 전시의 경우 준비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개막한 인상을 남겼다. 기획자가 전시 전반에 대해 꼼꼼히 기획하고 준비했지만, 옌황미술관의 전시공간이 비교적 넓은 탓인지 작품의 배치가 좀 산만하게 느껴졌으며, 어떤 작품들은 개막일까지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고, 특정한 전시조건이 필요한 일부 작품들은 전시장 측의 배려가 넉넉하지 못해서 이상적인 조건으로 전시되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기획자와 함께 작품 배치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많지 않았고, 개막식에 참가한 작가는 더 적었다. ‘@what’은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을 배치하는 인원이 충분해서인지, 작품 배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공간에 잘 맞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들은 바로는 아르코미술관에서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쉬빙과 먀오샤오춘을 제외한 참여작가 거의 대부분이 개막 전에 한국에 도착해 직접 작품 배치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네 가지 방면으로 비교한 내용을 종합하면, 중국 측의 반응이 미미한 상황에서도 한국 측은 열정과 기대를 한아름 품고 ‘리부팅’에 임했고, 중국 측은 ‘@what’ 전시를 기회로 이국정취를 체험하려고 하는 마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중국 측이 한국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적극성을 그다지 발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국 측의 열렬한 열정에 중국 측의 반응이 미미했던 것은 이번 뿐이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양국 현대미술 교류를 목적으로 열렸던 모든 전시에서 그랬다. 이는 중국의 국력이 성장함에 따른 국민의 심적 상황의 변화와 상관이 없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에 진입한 이때에도, 한국과 중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 각 국은 미국과 유럽의 문화는 참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시선을 먼 서쪽으로만 고정시키고, 정작 가까이 있는 주변의 닮은 문화권으로는 그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다. 국력이 신장되면서, 중국정부는 문화라는 소프트파워도 속히 발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현대미술에 대해 큰 포용력을 보이는 것과 비교해서 중국정부는 아직 한참 초보수준이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국제무대에서 지위와 영향력을 인정받는 국가적 문화예술 이미지를 수립하기 위해서 국가예산으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아직은 경제발전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정책을 펼치는 까닭으로 해석된다. 주제와 작품 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하는 수준이나 전시에 임하는 열정적 태도는 중국 측이 한국 측 전시를 보고 반성하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이미 국제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은 작가나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하는 한국 측의 전시방식 역시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두 전시를 더욱 자세히 분석한다면, 다각적 논의를 요하는 진지한 문제들이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오늘날 양국은 여러 공통된 문제에 직면해 있고, 양국 모두 자신의 문화로부터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데, 그럼 자신의 문제는 또 무엇인가? 어떤 것은 내 것이고, 어떤 것은 남의 것인가? 아니면 이제는 내것, 네것 할 것 없이 완전히 한데로 뭉쳐버린 것인가? 세계화라는 추세 아래, 동서양의 문화는 대립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가? 전통의 계승은 어떻게 이뤄야 하고, 남의 문화는 어떤 식으로 참고할 것인가? 문화의 확장과 흡수는 정부의 이념과 필요에 따라 변화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럼 개인인 작가는 이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문제는 국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시아옌궈(Xia Yan Guo, 1983- ) 독립큐레이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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