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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월

황주리

어릴 적부터 들어온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갈 줄은 정말 몰랐다. 적어도 그동안 그려온 그림들이 창고에 가득 쌓여 지나간 세월의 부피를 눈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인걸까? 아니다. 때로 나는 이 세월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그렇게 눈 깜짝할 새 사라진 세월을 저 가득 쌓인 그림들과 바꿨다는 생각이 아주 가끔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 나는 그 그림들의 무게와 부피에 짓눌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내게 가장 부러운 사람은 베토벤과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이다. 얇은 디스크 몇 장이면 전 생애의 노고가 다 담기는 그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영혼불멸의 세계,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그 소리들을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살아생전 무덤처럼 고독하였으나 사후로는 단 한 순간도 잊혀지지 않았다. 저 가득 쌓인 그림을 놓아두고 맘 편히 세상을 떠나가는 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마흔 살이 되면서 나는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생각이 뼈저리게 들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점점 불어나는 놓아둘 데도 없는 작품들, 먹고사는 일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기 일쑤인 그 좁디좁은 길을 죽을 때 까지 걸어가는 사람들,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나 최첨단 설치 작가나 그런 면에서는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그 세계가 남루하다해도 나는 육십이 되어서도 작가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의 일이다. 당시 뉴욕에 머물던 나는 작고하신 화가 김영주 선생의 전람회에 갔었다. 내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분이라 타지에서 만나니 참 반가웠다. 그날 밤 술을 거나하게 드신 선생님은 처량한 눈길을 달에게 보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다음에 태어나면 화가는 안 될 거다.' 그래서 내가 '그럼 무엇이 되고 싶으세요?' 했다. '사업가가 되어서 돈이나 왕창 벌란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엔 화가로 살아온 삶이 누추했다는 기분이 배어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돈을 왕창 버셨다면 화가나 될 걸 그랬다 하실 걸요?' 내 말에 선생님은 '그럴까?'하시며 쓸쓸하게 웃으셨다. 그렇게 쓸쓸한 뒷모습으로 내게 남은 선생님은 몇 달 뒤 서울에서 돌아가셨다. 유한한 삶 앞에서 우리 모두는 쓸쓸하다. 우리 중 그 아무도 젊은 꿈을 지니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어느 날 그대도 백발이 성성하리니, 오늘은 내일의 청춘이라 그저 열심히 살아갈 밖에........

- 서양화가 황주리(46세)씨는 1986년 석남미술상, 2000년 선미술상은 수상했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독특하게 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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