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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과속, 환생! 그리고 이음

한원석

지난 7월 16일 비가 내렸다. 한가한 공항 고속도로를 가속 페달을 계속 밟았다. 113 Km/h.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시야가 사라져 버린 길.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34년간 거침없이 달려온 내 삶의 속도가 갑자기 멈춰 섰다. 과속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 태어났다. 길이 사라지듯 내 의식이 하얗게 사라진 순간, 꿈속에서 수많은 지나간 나의 모습이 왔다 갔다 했다. 무작정 학교와 집을 뒤로 하고 그림이 좋아 옥수동 작은 작업실에서 밤새워 그림 그리던 나, 그림 그릴 돈이 필요해 이삿짐센터와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나, 닥치는 대로 일하다 보니 얼떨결에 인테리어 회사 사장님이 되어 있던 나,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을 가지고 영국 첼시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나, 뒤 늦게 시작한 학업으로 동경대 공학박사 과정 중인 나, 미술관을 설계하고. 전시회를 기획하는 나...수많은 나와 나 사이를 오가던 내가 사고로 눈을 뜨자 내게 닥친 현실은 잔인했다. 벌여놓은 수많은 일들을 마무리 짓지 못해 받게 된 수모와 빚더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가라 해도, 그 시점에 나와 함께 하던 이음 식구들 다섯 명이 모두 병원에 입원하는 악재가 겹쳤다. 그동안 애써 쌓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환생 - 청계천에서 별을 보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제로세팅 해야 했다. 제동 없이 급속도 내 달릴 수밖에 없었던 삶의 속도가 빚어낸 과실이었다. 우선 내 자신부터 추슬러야 했지만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매달렸다. 다시태어남 - ‘환생’. 내 인생과 작품이 일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그러지고 찌부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모이고 쌓여서 빛나는 첨성대로 다시 태어난 작품 ‘환생’. 별을 관찰하던 첨성대가 스스로 별이 되어 빛을 발하는 존재로 뒤 바뀌었다. ‘환생’은 청계천변 광통교 위에 세워져 현재 전시 중이다. 이 작업은 2003년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담배꽁초를 모아 만든 첫 개인전 ‘악의 꽃’에 이은 두 번째 환경작업이다. 작가 초년생에게 전무후무하게 허락된 전시회였다. 전시 이전, 영국 첼시에서 ‘Rubbish Museum(환경을 위한 미술관)’이란 제목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건축을 소재로 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에서 새로운 공부와 경험을 하던 차에 기회가 되어 일본 동경대 건축공학과 박사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은 Rubbish Museum의 이론적 연구를 완성 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제1회 베이징 아트페어에 가게 되었다.

<중국 따산즈798에 스페이스 이음을 세우다
동양문화의 원류인 중국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예술특구 따산즈798은 내가 꿈꾸던 그런 곳이었다. 이전에 드넓은 공장지대였던 곳이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작업실과 전시실로 활용 되어 예술가들만의 특별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동경대학교의 장학금과 영국에서의 전시를 포기하고 동경대에서 파견한 청화대 방문학자 자격으로 중국에 머물기로 작정했다. 중국행을 결행하자 뜻하지 않게 상하이 호텔 설계일도 주어져 따산즈798내에 제법 넓은 (56×16m ) 작업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평생 소원인 작업만 할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되었지만 상하이 호텔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곧 꿈은 무너지고 작업실의 1/3 공간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개인전을 한번 연 초심 작가인 나는 작가들이 작품을 맘껏 내다 걸 수 있는 상업적이지 않은 순수한 갤러리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Space ieum을 오픈하게 되었다.

이음은 2005년 5월첫 전시 ‘바나나 서퍼’전으로 따산즈798내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리버풀 비엔날레 큐레이터, 테이트모던의 사이먼, 네델란드 교육부 장관등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대단한 찬사를 보냈다. 이어 7월에 열린 개관전시회 ‘브러쉬 아워’전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처음으로 중국 예술계에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백남준 미디어 프론티어’전을 이은 ‘탕송’전은 중국미술의 1세대이며 약15년 전 중국 공산당의 눈 밖에 나는 예술적 실험으로 그 후, 전시 자체가 허용 되지 않았던 재야 예술가인 탕송의 위험한 재기 전시회로, 중국 미술사에 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또한 ‘이윰’, ‘브러쉬 아워 2’, ‘엔드리스 콜론’, ‘PNP’, ‘DNA’전에 이르기까지 전시회는 계속 되었다.






스페이스 이음의 내일
이음은 순수하게 전시만 하는 것으로는 운영에 한계가 있었고, 그것은 곧 내 스스로의 경험의 한계이기도 했다. 악재인가, 내가 사고가 났던 시기에 이음 식구들마저 하나같이 병원 신세를 지면서 공간운영에도 위기가 닥쳤다.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베이징과 서울을 오가며 무리하게 질주 했던 복잡한 일들이 한순간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었다.

거대한 시작의 나라 중국. 그곳에 첫 문화공간을 세웠다는 상징성과 전시회 기획의 보람은 어린 내게 너무 거대한 짐이었다. 경영난을 타계할 힘이 역부족이면서 쉽게 놓아 버릴 수도 없는 엄청난 짐.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스페이스 이음’으로 얻고자 한 것은 작가들이 맘껏 전시회를 열수 있는 교류공간이었다. 욕심 없이 순수한 작가적 의도로 만든 전시공간이었으니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끌고 갈 수만 있다면 스페이스 이음의 존재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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