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41)가계수표의 추억

여동헌

1997년의 일로 기억된다.

판화미술제 오픈 하는 날 여러 귀빈들 중에 동그란 뿔태 안경을 쓰신 호리호리한 백발의 노신사 분께서 오시더니 ‘자네 작품 쓸 만 하구만~ 이 작품 내가 한점 구입할 테니 전시 끝나고 전화하게’ 하시면서 명함을 한 장 주셨다. 고급 스러운 종이로 만든 걸로 봐서 보통 분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분이 가시고 나서야 나중에 그분이 이대원 선생님 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분이 우리나라 대표 원로작가 시라는 것도…

전시가 끝나고 이대원 선생님의 홍대 앞 작업실을 방문했다.





빨간 벽돌 건물로 기억되는데 이대원 선생님의 정체를 알 고 난 후라 대가와 독대한다는 설레임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건물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선생님 작업실로 향하는 동안 대가들의 작업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혹시 넥타이를 매고 그림을 그릴까? 비싼 물감만 사용하겠지? 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선생님의 작업실로 들어간 나는 생각 보다 훨씬 작은 작업실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그마한 공간에 캔버스가 빽빡히 서있고 오일 냄새과 알 수 없는 향이 어우러져 내 코를 자극했다. 이 선생님은 18세기의 화가들이 입을 법한 작업복을 입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왔어? 자네 작품 참 이뻐~’ 하시면서 어디 선물 할 곳 있는데 마침 내 그림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는 말씀도 덧 붙이셨다. 잠깐의 대화 끝에 이 선생님께서 작품 대금을 주신다면서 길쭉한 허연 종이 위에 작품가격을 쓰시고는 쭉 찟어 주셨다.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종이 위에 내 그림 가격이 적혀있는 종이를 받아 들고는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 선생님께서 “응 그거 은행가서 바꿔” 라고 말씀하셨다.

작업실에서 나온 후 들린 은행창구에서 직원에게 그 종이를 내 밀면서 ‘이게 도대체 뭡니까?” 라고 질문을 던졌다. 은행직원 왈 ‘이건 가계수표라는 겁니다.’ 라면서 씩 웃는 것이었다. 그 표정이 ‘이런 것 처음 보니?’ 라는 표정 같았다.

세월이 흘러 TV뉴스에서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가 나올때 그 뒤 벽면에 언젠가부터 이대원 선생님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그 장면 볼 때 마다 이대원 선생님을 만날때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생각난다. 가계 수표와 함께…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