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8)고희 맞은 현역 미술평론가 오광수 선생

김달진


지금도 미술 비평 글을 쓰고 전시를 보러 다니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광수 선생의 고희를 맞아 11월 24일 오후 5시 웨스턴 조선호텔 그랜드 볼륨에서 ‘고희 기념 논총 헌정연’이 성황리에 있었다. 이날 기념논총으로 22명의 필자가 참여한 『한국 현대미술 새로 보기』와 오광수 한국근현대미술 앤솔로지 『시대와 한국미술』 두 권의 책이 나왔다. 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위원장에 홍선표, 위원으로는 김영순, 김진엽, 박계리, 서성록, 윤우학, 윤진섭씨가 참여하였다. 논총 헌정 추진위원회는 위원장에 윤진섭, 위원으로는 김영나(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 김춘옥(한국화여성작가회 회장), 노재순(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석종수(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 엄중구(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 대표이사), 유희영(서울시립미술관장), 윤우학(한국미술평론가협회 고문), 이두식(서울미술협회 이사장), 이현숙(한국화랑협회 회장), 임희주(현대미술관회 부회장)씨로 미술계가 망라되어 참여했으며 29개 화랑이 도움을 주었다.


오선생은 196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공간』, 『화랑』, 『현대미술』의 편집위원, 환기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역임했다. 비평가로는 공식관문을 통과한 1호이며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전시회 커미셔너, 공모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또한 우리미술계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현장의 중심에서 활약했으며 이번에 스물일곱 번째의 책을 펴냈다. 다른 평론가처럼 비평이 현학적이지 않고 일반인들에게도 어렵지 않아 오랫동안 글 잘 쓰는 필자로 회자되고 있다. 필자가 오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는 큐레이터 직제가 도입되기 전이며 오선생은 전문위원으로서 미술관의 자문 일을 맡고 계셨다. 당시 이경성 관장님이 동관의 1전시실을 비워 전문위원실•자료실 문패를 달았다. 이번 오선생의 기념논총에 주요 저작목록을 위해 신문과 잡지를 조사하다보니 새삼 글의 양과 현안에 대한 발언이 대단함을 실감했다. 오선생은 과묵하고 말씀이 적어 늘 대하기가 어려웠는데 그 점은 미술계에 잘 알려진 성품이다.


회고담을 여쭈니 “나는 평론가로서의 활동이 미술과 일반인의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술관이나 미술잡지사의 근무도 일반인을 미술에 끌어들이는 매개자로서의 몫이라고 여겼다. 미술 비평을 하다 보니 우리 근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어 자연스럽게 우리 근대미술을 나름대로 정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해나가다보니 제도에 걸리고 사회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었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밖으로 알리는 일에 노력하겠다.”라며 고희를 무색하게 하는 의욕을 보였다. 지금 우리 미술계는 ‘비평의 부재’라는 말을 실감하는 데, 그러기에 오선생께 더더욱 날카로운 필봉을 주문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이는 미술계 발전과 1세대 평론가로 후학들에게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오광수(1938- ) 홍익대 회화과 학사, 현재 한솔뮤지엄 관장, 제3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한국큐레이터협회 고문,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등 역임, 문화훈장 보관장(2000), 김세중문화재단 한국미술저작상(1998) 등 수상, 『김종영』(2013, 시공아트), 『한국현대미술사』(2010, 열화당),  『21인의 한국현대미술가』(2003, 시공사), 『미술이란 무엇인가』(2003, 정우사) 등 출판.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